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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세 아이들에게만은 공평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용돈을 줄 때, 첫째와 6년 차이 나는 막둥이도 똑같은 금액으로 줬다. 물론, 통장에 입금하고 관리는 내가 했다.

세배돈을 친척분들이 나이차대로 주시면, 나는 똑같이 분배했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같이 안주더라. 첫째를 20살까지 줬으면 막내도 20살까지는 아니더란 말이다. 그 어른의 형편으로 사정으로 끊어졌다.

 

문구용품의 경우에도 가능하면 같은 것을 사주려고 했다. 수채화 물감, 붓 이런 것을 공용으로 사용하게 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용품으로 마음껏 사용하게 했다. 공용으로 하면, 사실 애착도 없고, 관리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반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내가 죽을 때를 생각해보면, 막내가 엄마와 같이 한 세월이 가장 짧다는 것.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만 36세였다. 30대에 아버지가 돌았가셨다니.... 서러웠다. 그런데, 내 동생은, 만 34세였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더 아팠다. 내 동생은, 서른 네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군대다 자취다 하면서 떨어져 산 세월도 더 많았는데...

 

그래서, 첫째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을 때, 둘째, 막내에게도 똑같이 줬다. 금액도 같게. 

 

무엇을 해 주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더 치우치지 않도록, 서운하지 않도록. 차별받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친척분들을 보면서 차별을 더 느꼈었다. 내가 첫째였지만 딸이고, 내 동생은 장손이어서 받게 되는 우대들. 특히 작은 집의 사촌동생은 내 동생과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더 어린 취급을 받았더랬다. 어린 내 눈에 그런 것들이 불합리해 보였다.

 

그리고, 요즘.....

나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공평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공평할 수도 없다. 어떤 기준으로 공평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조차 공평하려고 했지만 좌절인것을.
왜 꼭 행복해야 돼? 라는 장도연의 말처럼 꼭 공평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공평이 아닌 다른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은 또한 불평등하다. 그러나 기회는 평등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기회가 평등한 것 같다. 

집안일로 인한 세 자식들의 갈등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집안일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더라. 누군가는 더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덜 하게 되고. 같은 일이라도 각자의 능력치에 따라 노동 강도와 시간이 다르더구나.

 

그것을 불평하기 보다는, 개인의 차를 인정했으면 한다. 사바나 시절우리 조상들이 조금은 부족한 개체를 돌본 것처럼, 내가 힘이 더 있으면 조금 더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두고. 우리들의 자정적인 힘을 믿어보자. '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삼켜본다. 왜냐하면, 이젠 그들이 쉽지 않다. 독립된 개체들이다. 그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더 고민해보겠다. 내 필터에 걸리는 것이 없을 때, 말해야지.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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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대학 면접을 보러 서울에 가게 되었다.

수시 6장 중 아직 발표하지 않은 1개 대학 빼고

1차에 붙은 유일한 학교다.

 

엄마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아... 그 먼 곳에......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올라왔지만, 바로 버렸다.

그래. 같이 가자!

(올 2월 초를 마지막으로 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다.

코로나 19는 그렇게 내 삶에 들어왔다. 집콕 생활을 하게 했다.)

 

그저께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거의 버스를 타지 않는 시간에

거의 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갔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던 둘째.

아마, 동생이 태어나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그것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둘째와 나는 격렬하게 부딪혔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느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시절이 있었다.

홈 스쿨링 하던 14살~16살 즈음이 그러했다.

 

고등학교 입학해서는 기숙사에 들어갔고,

둘째는 그렇게 마치 독립한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어진 듯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고.

 

입시 준비를 하면서,

아니 정확하게는, 수시 자소서 내는 마지막 날,

전우애(?)를 다지며 마감 1분 전에 6개 대학 자소서를 완성해서 내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면접 때도 같이 다녀왔다.

 

둘째는 자가용을 가지고  가길 원했지만,

난 서울에서 운전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서울 살 때 운전했었다. 운전경력 23년째다.)

영하로 떨어져서 더욱 자신이 없었다.

 

일단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알아보겠다고 했다.

토요일 새벽, 버스 타고 가자고 했더니 바로 삐진다.

운전하면서 긴장하느니, 차라리 대중교통으로 가고 너를 지원하겠다!

라고 말했고, 둘째는 바로(!) 수긍했다.

 

코로나 2.5단계였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사람들과 멀리했으며,

가장 중요한 마스크는 꼭 밀착하고 만지지 않았다.

 

면접은 오후 1시 50분까지 입실.

빈 시간을  동생네에서 보냈다.

 

길을  헤매며 학교에 도착했고,

면접 안내서와 교문 앞에 쓰여있는 외부인 출입금지에 위축되어,

둘째만 교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삿짐 수준으로 싸 온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둘째가 두고 간 둘째의 배낭까지 들고,

교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교문앞에서 행운을 기원하며 찍은 사진

 

그러면서 보니,

어라?

수험생과 부모가 함께 면접 보는 건물로 간다?

눈치를 쓰윽 보다 (교문 앞을 통제하는 인원들이 있었다.)

슬금슬금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안내 지도를 보는 척하다가,

면접 보는 건물로 가는 무리들을 몇 번 보낸 후에,

나도 따라갔다. (아, 소심하다, 소심해!)

 

면접 보는 건물 입구까지 수험생과 함께 갈 수 있었고,

이미 그 앞은  아이를 들여보낸 가족들이 있었다.

혼자 온 아이들도 많았다.

 

(나올 때 보니, 학교 안 수험생 차량은 주차금지가 맞지만,

학교 담을 따라 주----------욱 차들이 시동 주차한 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더라.

주차 안내 요원들도 그냥 두더라. )

 

둘째는 오후 1:50분 입실,  2시 면접 팀이었고, 3시 8분에 나왔다.

순서가 뒤로 배정받아서 오래 걸렸단다. 

(무거운 배낭과 함께 꼬박 1시간 30분을 추위에 서성였다. 이것은 다음날 몸살로 나타났다.)

 

면접시간은 거의 1시간 단위이고,

그 시간에 배정받은 수험생이 함께 들어가고, 

면접 마치는 순서대로 바로  나온다고 한다.

 

이 대학은 직접 가서 비대면으로 면접을 했단다.

대기실에 있다가 순서가 되어 들어가면

앞에 노트북과 카메라가 있고,

다른 장소에 있는 면접관 두 분과 화상으로 연결되어 면접을 보았단다.

면접관은 전공 교수님  한 분과 입학사정관 한 분, 이렇게 두 분이다.

 

면접시간은 10분이고, 질문 세 개를 받았단다.

둘째는 5~8개를 예상했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놀랐단다.

잘 봤냐고 물었더니, 생각하고 싶지 않단다. ^_^ 그래~ 알았다~~~

 

다행인 것은, 대기실이 추웠는데, 둘째가 기다리던 면접장소엔 난로가 있어서

정말 따뜻하게 있었단다. 정말 운이 좋다!!

추웠다면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고,

뇌는 이것을 자신감이 없는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초등학교 사설유치원, 일반초등학교, 대안학교 초등학생, 홈스쿨링, 검정고시, 일반고등학교... (기숙사까지, 비대면 온라인 수업도)

우리 둘째, 참 많은 것을 겪었다.

(첫째와 막내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대학에 뜻이 없다. 둘째를 통해 잠시나마 수험생 엄마 경험을 해 본다.

대학 안가도 괜찮다며 키웠기 때문에, 이번 면접보러갔을 때 나도 둘째도 덤덤했다.

(떨리긴 했다는데, 난로 덕분에 괜찮았단다!)

 

완전 다른 전공으로 대학교를 두 번 다닌  엄마와 (휴학기간 포함 대학생 신분 12년!!)

대학원 졸업한 아빠를 둔 아이들에게, 나는 대학은 가고 싶을 때 가라고 했다.

아무 생각없이, 대학 안가면 낙오자가 되는 줄 알고 억지로 갔던 첫번째 대학교.

 

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동안 (그 때까지 해 본 적 없는 )미술입시를 하며,

눈물로 갔던 두 번째 대학교!

 

성취감, 입시에 임하던 자세, 공부하던 자세, 간절함, 의지... 이런 것들이 정말 확연히 달랐다.

내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행동하고, 마침내 성취했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것은 살면서 좌절할 때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난 아이들이 이것을 얻기를 바란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멋진 삶!

부모의 강요, 부모의 기대, 부모의 바람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을 나는 지원한다!

 

(남편의 교육관과 다르다. 남편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한다 주의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 면접볼 때 추천하는 물건 :  붙이는 핫팩(등과 아랫배에 붙였다.) 따뜻한 물. 마스크 여유분. 

** 면접 복장 : 단정하게.  학교를 알 수 있는 어떤 것도 안됨.

                  대기실에서 두꺼운 패딩입고 있다가, 면접장에 벗고 들어감.

                  마스크 착용한 채 면접봄

** 돌발상황 : 점심식사에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있었는지, 식사 후부터 목에 자꾸가래가 낀다고 했다.

                 마침 내 배낭에 가지고 다니던 용각산 쿨 과립이 있어서 먹였다.

                 둘째는 전신중증아토피였고, 우유,소고기에  반응한다. 

                 용각산 쿨 성분에 첨가물이 많고, 성분에 대해 명확히 알기 어려워

                 설명서를 보면서 고민을 했다.

                 둘째는 말 한마디에도 계속 가래 때문에 흠--  흠-- 소리를 낸다.

                 그냥 먹였다.

                 다행히  십여분 안에 가라앉았다. 

                 나중에 시간을 따져보니 용각산 쿨(복숭아맛)을 먹을  후, 2시간  후에 면접을  본 셈이었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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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연락 온 친구가 세바시에 아토피가 나왔다고 한다.

영상을 보았다.

친숙한 사진들.

할많하않.

 

 

youtu.be/bmdyZO-DxZQ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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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셋째가 중학교를 갔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를 탔고,

어리기도 해서 편의점에 매일 가지는 않았던 듯하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달라진다.

편의점을 매일 간 듯하다.

아침에 일찍 학교 가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간식, 음료 등을 사서,

(시골이라 마을버스가 자주 안 다님. 학교 앞에 내리는 시간이 8시. 등교시간은 8:50)

교실에 가서 아침에 일찍 온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같이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작년 말.. 겨울이 되면서 팔에, 목에 보이는 좁쌀 아토피들이 점점 뭉쳐서

500원짜리 동전 크기 이상으로 번졌다.

온몸이 반점으로 덮인 듯한... 전형적인 전신 아토피다.

 

겨우 내 전신에 퍼질 대로 퍼진 지난 2월,
셋째와 대화를 했다.

 

1. 음식 조절 하기
2. 보조제를 꾸준히 먹기

3. 몸에 자주 크림 등을 바르기

 

지난달에 셋째의 방에 갔을 때,

방에 수북한 각질을 쓸어 담은 통을 보았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일 줄 알았는데...

 

돌 무렵부터 몇 년간 중증 전신 아토피였던 둘째와 셋째.

하루에도 몇 번씩 내복 속의 각질들을 털어냈었다.
(가장 심했을 때는 이것도 안됨. 진물과 내복이 붙어있음.)

수북하게 쌓인 각직들을 보면서,

이게 다 황금이면 좋겠다~라고 했던 아토피 카페의 엄마들이 생각했었다.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유머~

 

각질 통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
이게 모두 금이면 좋겠다~ 우리 부자 되는데, 그치? 

셋째가 ㅋㅋ 거린다.

 

4월이 되면서 가족 규칙을 하나 더 만들었다.

 

4. 셋째가 못 먹는 것은 가족 모두 먹지 않는다.

 

사춘기, 중2병, 친구들 못 만나는 스트레스...

그리고 전신으로 퍼진 아토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짜증내고,

덜 화내고,

조금 웃고,

그래도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셋째가 기특하고 고맙다.

 

이번 일을 통해,

식단관리를 스스로 해서 아토피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둘째의 경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세 끼 급식을 먹어도 조금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도로 관리를 하고 있다.

습관화가 되었다.

(중학교를 홈 스쿨링 해서 편의점에 갈 일이 없었다......는 게 크다.)

 

셋째는 지금,식단관리를 하면서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유제품에 대한 반응이다.

일주일동안 매일 슬라이스 치즈 1장 먹는 것을 해 보는 중이다.

기록도 해보고라고 했고,

역시~ 중2는 하지 않는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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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어디에도 소속한 곳이 없는 스무살 첫째에게,

4년동안 마음대로 해보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라고 했다.

후에 첫째는,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돌무렵부터 다닌, 짐보리, 짐슐레.
공동육아 어린이집.

강남의 초등학교.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거기에서 또 전학,

거기에서 대안학교로 또 전학.

홈스쿨링.

고등학교 입학, 자퇴, 홈스쿨링.

그저 나열만 했는데도 답답하다.

첫째라는 이유로 엄마의 시행착오 속에서 혼란을 겪었을 내 첫아이.

나는 첫째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사회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따뜻함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첫째는, 자신이 쓴 책과 그림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그린 그림을 보면,

관찰력이 뛰어나다.

섬세하게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의 마음까지 그림으로 표현했다.

어린아이의 그림이지만, 따뜻함을 주었다.

 

그리고 언젠부턴가 잦은 전학과 동생들의 아토피로 제약을 가졌을 것이다.

 

이제,

그 제약을 발견하고 사라지는 교육을 받는 첫째를 옆에서 볼 때,

어느 새 내가 염려가 사라졌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발견하고 포기하고 발견하고 포기하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하는 모습이

멋지고 훌륭하다.

 

소소하게 공모전에서 당첨되는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너의 길을 가렴!

 

멋지다, 너!!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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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부터 시작된 전신 중증아토피를 앓던 둘째와 셋째.
둘째는 열 여덟이 되었고, 셋째는 열 네살이다.

 

둘째는 올 1월과 5월에 내가 듣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작년 고1때와 지금 고2의 생활이 완전 다르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말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그 동안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말 못했는데...

    엄마가 내가 안 좋은 거 먹고 아토피 심해지면 물어보잖아.

    뭐 먹었니? 하고. 

    근데 그 말 들으면 너무 화나고,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됐다고 여겨져서

    힘들었어."

슬픈 표정도 심각한 표정도 아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내게 말했다!

 

   " 그랬어? 엄마는 몰랐네~.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교육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작년에 만약 이 말을 내게 했다면( 교육 전이라 안 했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자책했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망쳤구나. 십칠년이 넘도록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나는 한다고 했는데... 

 

그 다음엔 이런 생각을 했겠지.

 

내가 미쳤지. 십년이상 밤에 2시간 이상 못자면서 돌보느라 내 몸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걱정되서 물어본건데, 화가 나?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어.

나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실제 아파서 40대 이후 4~5년을 거의 종일 누워지냈다. 몸도, 마음도...)

 

하지만 지금은 교육받고 훈련중이다!

나는 전환되었다!

그래서 저 말이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고,

그 말을 해 준 둘째가 고마웠다.

그 후 셋째(는 어려서 교육을 안 받았다.)와 이런 대화를 했다.

 

"엄마가 너한테 뭐 먹었니? 하고 물어보면 너 바로 화내고 가버리잖아.

항상 갑자기 삐져서 엄마가 당황했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물어보면, 너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 거였니?"

 

"응. 너무 짜증나!! 엄마 표정도 그래!!"

 

"그랬구나~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안 물어볼께! 네가 먹고 기분 좋으면 됐어!!

다만, 한계치가 있다는.."

 

"엄마! 쉿!!"

 

"아~ 그래~ 쉿~!! "

 

이런 대화가 가능해졌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맞췄던 그 때의 나를 희생, 헌신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고, 그게 내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아이들에게 잘못되었다!! 라는 영향을 주었고,

아이들은 자신을 부족한 사람,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부정적인 생각만하고 살던 내가,

긍정의 마인드컨트롤이 안되었던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긍정의 말이 툭~ 튀어나와서 깜짝깜짝 놀란다!!

이거 나 맞아? ^^

 

사랑스런 내 첫째, 둘째, 셋째!!

보고 싶다~~~~~~~~~~~
(명절이니 다 보겠지만!! ^^)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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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관련으로 홍콩에 갈 예정이다. 가을엔 파리에 가야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글을 찾는 중이다.

아울러 좋은 포스팅을 써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래 글은 작년 2017년 기준이다.


[AFL 2017] "홍콩" 출장정보 TIP! (링크)


https://blog.naver.com/exmacom/221115526188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출장정보 TIP! (링크)


[출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출장정보 TIP!|작성자 엑스마컴


(링크와 제목을 복사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영 이상하게 되었다. 

링크라고 써 있는 글제목을 누르면 이동한다.)


올 4월에 다녀온 쿠알라룸푸르. 모르던 내용도 있다.


다음 달 가게 될 홍콩.

22년전에 패키지로 한 번 갔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전시회장에서만 있을 예정이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주 전시회 도우미 4일 해보니, 교통체증 때문에,

오고 가는 시간만 3~4시간.

집에 오면 그대로 뻗었다.

운동도 영어도 글쓰기도 생각할 틈도 없고.


홍콩 전시회는 B2B 이고 3일이어서 이번보다는 괜찮을 듯

이 아니고, 영어가....영어가.............ㅜㅜ


그래도 화이팅!!

오늘도 열심히 자료조사하고, 

필요물품 정리, 준비사항 정리해야겠다.

모니터 보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재미있는 일이다. 아주 낯설고 새로운.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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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밤에 둘째를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다.

짐이 많아서, 버스타고 간다는 아이를 잡아 차에 태웠다.

교문 앞에서 내려달라는데, 교문 안에서 차가 나온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 보니, 차들이 많다. 

집에서 하루 보낸 아이들을 입소 시간에 맞추어 부모들이 데려다 주는 걸 몰랐다.

기숙사 건물 앞에 주차하니, 혼자 짐보따리들을 들고 간단다.

얼핏 다른 아이의 아빠가 트렁크를 건물안까지 들고 가는 게 보이길래,(눈치빠름~)

따라 내려서 보따기 하나를 들었다.

들어가면서 보니, 모두 트렁크를 밀고 간다.

둘째아이는, 커다란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배낭 한보따리 메고,

이불은 분홍보자기에 싸가지고......

이런.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애가 따로 없다. 집에 트렁크도 많은데...ㅠㅠ

하여간, 어설프다. 

이것저것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정작 필요한 건 안 물어봤나보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하고 생각해 본다.

(물론 바로 직전에 잔소리 한 다발이 마음 속에 장전되어 있었지만,

내려놓기로 해서... 말 안 했다. 잘 했다. 셀프칭찬이다.)


아이는 엄마 생각보다 10배 잘한다를 되뇌여본다.


엘리베이터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들어가려는 아이를 잡아,

꼭 끌어안아주며 인사를 했다...울컥.

근데 얘는 "엄마 얼른 타야돼~ "하며 쌩 하니 가버린다.

쩝.

눈물이 나오려다 쏘옥 들어간다.

진짜 0.0001초 끌어안았나?? 안아본 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눈이 어두워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길도 이상한데로 해서 집에 오느라. 슬퍼할 새도 없었다.


보통, 아들이 군대에 들어가 부대에서 작별인사를 하자마자부터

엄마는 운다. 한달.. 아니 몇 달 슬프단다.

그런데 1년쯤 지나면, 무슨 휴가를 그렇게 자주 나오냐고 한단다.

그런것이겠지.

고등학생도 기숙사 들여보내면 한 달은 생각나는데,

점점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1주 혹은 2주에 한번 나와서 사이도 더 좋다고.

그럴 듯 하다.

나도 유난히 둘째와 가장 많이, 가장 세게 싸우는데,

지금은 <섭섭>이지만 곧 <시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주말에 오면, 어쩌면 다정하게 대하며 

맛있는 거라도 해 주려고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부엌 근처는 얼씬도 하기 싫으니..




**고등학생 기숙사 필요물품(검색질로 찾은 내용)

1. 이불은 이불집에서 가서 기숙사이불 달라고 하면 준다고.

   아니면 빨기 쉬운 차렵이불이 좋고. 매트커버 혹은 패드 추가.

   냉난방은 잘 되어 있어서 두꺼운 이불은 필요없는 경우 많단다.

2. 수건 얇은 것 많이, 속옷 넉넉히, 드라이기, 텀블러, 욕실용 슬리퍼

3. 잠금장치 있는 트렁크( 물품 분실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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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날인데, 글쓰기를 밤 늦은 시간에 한다.


1.

이번 달에는 최민석 작가의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현재 <청춘,방황,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읽는중이다.

재미있어서 빨리 읽고 싶은데,

반면에 아끼느라 뜸들이게 되는 책이다.


2.

둘째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일 모레 일요일에 들어간다.

2학기때 들어가라고 윽박(?)지르다가,

하도 막내랑 투닥거리길래 일찍 들어가!!!!!!!!!!!!!!!

했더니,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단다.

그 다음날 바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기숙사 자리 있으니 당장 들어오라고.

이 녀석 들어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막상 바로 들어간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이들에 대해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급 허전.

급 허전.

급 허전.

마음이 허한 게 달래지지 않는다.


3. 

우리가족은 일반적이지 않은 조금은 다른 관계들로 엮여있다.

남편의 재택근무기간이 길었고,

아이들의 홈스쿨링 기간도 길었고,

학교를 다니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았고,

아토피 때문에 학교를 다녀도 안 나간 날이 더 많았다.

즉,

한 집에서 다섯명이 오글거리며 산 기간이 말도 못하게 길다는 것.

가족이라 해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일반적인 가정은 아침에 다 같이 나가서 저녁에 만나는 생활을 하기에

공유하는 시간이 아침, 저녁, 주말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1년 364일 24시간 붙어 있고,

나는 밤에도 아이들과 함께 자야만 했다.

왜냐하면, 가려워서 잠 못자는 둘째,세째는

밤마다 2~3시간 마다 깨서 가렵다고 긁고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긁어줘야 하니까.

한 아이당 짧으면 30분, 길면 2시간을 긁어줘야 했다.

그 생활을 13년 했다.

내 몸이 너무 안 좋아지고, 버티기 힘들어서, 

가끔 따로 나와 자기 시작했고, 지금은 잠자리 독립했다. (만세~)


4.

이런 이유로, 어쩌면 우리 가족은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서로 지나치게 잘 알아서 힘들기도 하고,

막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둘째는 영문도 모르는데,

막내가 둘째에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지나치게, 많이 붙어 생활한 부작용(?) 아닌 부작용.

그래서 조금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5.

그래도 막상, 보내려니... 짠하다.

첫째아이가 작년에 혼자 3개월 캠프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제

이렇게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고

자기들의 세상을 찾아

뚜벅 뚜벅 걸어가야겠지.

내가 그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


아이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10배 더 잘하고,

자기(아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2배 더 잘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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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사춘기 들어가는 아이를 맞는 자세 혹은 준비


두 번을 겪었다. 아이의 사춘기.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 사춘기는 대략 7년 정도는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위의 두 아이는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나갔고, 나머지 잔챙이 시기.

하지만 막내는, 아직 준비기일 뿐.


첫째의 사춘기는 나도 처음, 애도 처음이라 우왕좌왕...

서로 공부하듯이 지나갔고..(아직 좀 남긴 했음)

둘째의 사춘기는, 두번째라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이런 아이(나랑 똑같다고 함)는 처음이라...

울었다.

하필 내가 가장 힘들고, 누워지내던 시절과 겹쳐,

그야말로 분노-폭발-고성-눈물-읍소-사과-분노-폭발-고성-눈물-.....

둘이 무한반복하는 상황.

하지만, 좀 컸다고 말은 통하니,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


그러나...(두둥~~)

위의 두 아이들과 나이 차이 좀 나는 셋째는,

하아............................


막내 특유의 눈치빠름과 두뇌 회전력.

애교와 불쌍함과 화내기의 절묘한 시간차 공격으로 인해, 

이 아이의 어린 시절, 

혼내야 할 때, 

요즘말로 "귀요미 뿜뿜"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실수를 많이 한지라,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생각이 좀 남다른 것 같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눈치가 빨라요...)


게다가, 매일 글쓰기와 영어공부 등을 하며,

이제 나쁜 사람(?)에서 벗어나고자 애 쓰는 중이어서,

무조건 혼내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좀 더 지혜롭게 대하고자 하다보니,

혼낼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라기 보다는 걍 넘어간 거 같다..)

둘째 사춘기와 내 방바닥생활의 절정기와 겹쳐서,

적당한 시기를 놓쳐버린, 아니 방관해 버린것이겠지..


지금이라도 바로 잡는 게 맞을 듯하여, 

마침 기회가 왔을 때, 셋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했다.

(근데 잔소리 폭탄이었던 듯.)

아이를 혼낼 때 1절만 해야 하는데,

꼭 도돌이표 무한반복이 되고 만다.

얼마전 첫째와 대화중,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랑 얘기하면 좋긴 한데, 

가끔(자주겠지..) 무한반복이라 지루해질 때가 있다(많다겠지..)고.

이제 아이들에게 조언을 들을 때가 왔다!!


셋째는 울었고, 나는 마음 아팠고, 

몇 시간이 지나도 셋째는 나한테 삐져있었고,

깜빡증이 심해진 나는 벌써 잊어버렸고.


**잊지말자!! (나에게 하는 충고)

1. 잔소리는 1절만 하세요. (아이들에게도, 나보다 나이 많은 아이(?)에게도)

2. 내가 잘못했으면, 상대가 어린아이여도 반드시 사과하세요.

   (아이에게 사과하기...생각보다 힘들다..ㅜㅜ

   아이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 잊지말자)

3. 혼낼 때는 감정을 싣지 마세요. 최대한 부드럽게 하세요.


의지력과 감정조절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혼내다보면, 감정 조절에 실패할 때가 많은데,

의지력이 가장 높아졌을 때 혼내면 괜찮을까?

간단한 걷기 운동이나, 거꾸로 누워있기 등으로 

뇌에 신선한 공기를 많이 공급해서 의지력을 채운 후 혼내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잔소리 반복도 참으면서 

잘 혼낼 수 있을까? 

아니면, 혼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일까...


막내의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약 1년 반정도 후로 예상되는 사춘기가 꽃 피울 그 시기,

바로 그 시기 중.이.병을 생각하며,

부디 마지막(셋째가 막내다. 휴우=3) 사춘기 아이와 지내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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