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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앞 가는 지하철 2호선.

시골살이하면서 가끔 지하철 탈 때면, 나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얼핏 들은 배 사고.

 

3시간의 특강을 듣고, 선생님과 같은 들은 사람들(처음 만난 분들)과 식당에 온 시간이 오후 1시 좀 넘은 시각.

밥을 먹으며 식당의 TV를 보았다.

전원 구조 되었구나! 다행이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 돌아 집에 오는 전철 안.

전원구조가 아니란다.

......

뭐지?

 

 

저녁이 되어 집에 도착, PC를 켜 본다. (집에 TV가 없다.)

믿을 수 없는 뉴스들.

밤 늦게까지 뉴스를 봤고,

자다 깨면 뉴스 확인을 했고,

다음 날(17일) 깨자마자 뉴스부터 확인했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부모들과 학생들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당시 열다섯, 열셋,아홉의 세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곧 내 아이들도 그 나이가 될 것이기에.

수학여행에서,

그냥 다들 가능 수학여행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더 큰 상처는,

가짜뉴스와 그 뉴스를 믿는 어르신들이다.

나의 노모 또한 그 뉴스를 믿으며, 비난하실 때,

내 상처 위에 또 상처가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십년 전 오늘을 기억합니다.

그 배의 사람들과 가족들을 응원합니다.

 

비겁하게 이렇게 글로만 끄적인 것에 대해 미안합니다.

그저 기억한다는 말 밖에 못해서 미안합니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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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잘 지내다가, 사소한 일로 관계가 소원해지는. 해결하고자 하나 상대의 눈치만 보다가 더 악화되는.  이젠 해결이고 뭐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은 그런 때.

 

일을 하면서도 발끝 언저리 어딘가에서 '그것'이 자꾸 채인다. 일에 집중해보지만, 그것이 채이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 에너지도 쑥쑥 사라진다. 피곤해진다. 졸려온다. 

 

잠시 일을 미루고 잠깐 눈을 붙여본다. 잠깐의 충전으로 나머지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힘을 얻지만 여전히 그것이 떠오른다. 왜? 왜? 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신선한 아침의 뇌는 사라져버린다.

 

이럴 때, 잠깐의 웃음을 주는 웹툰 하나. 웃플 때가 많은 웹툰. 고단한 작가의 삶 속에서 해학을 본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래! 이거면 됐지. 아침에 한번 웃으면 됐지. 웹툰 자체보다, 함께 호흡하고 있는 구독자들의 댓글이 때론 더 따스하다. 그 작가에 그 구독자들!

 

그래. 많은 사람들이 뭐가 필요한가. 잠깐이라도 그 순간 사람들의 공감 한 마디가 더 위대한 것이다. 악플보다 선플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백개의 선플 속에 1개의 악플이 더 아픈 법이다. 손실회피편향와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작동해서 그렇다. 뇌가, 우리의 뇌가 그렇게 진화했다. 

 

넘어서자! 수렵채집의 뇌로 현대를 사느라고 우왕좌왕하는 내 뇌여! 지금은 선사시대 사바나가 아니다! 그래서, 다 괜찮다! 어떻게든 버티면 살아진다. 용기를 내면 관계도 회복할 수 있다. 용기!! 

 

글쓰기를 배우는 중이다. 내면으로 침참하는 것도 배우는 중이다. 내 안의 나와 만나게 하는 글쓰기. 이것 역시 용기가 필요했다. 들여다보고 글로 써보는 나를 인정한다. 잘했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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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세 아이들에게만은 공평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용돈을 줄 때, 첫째와 6년 차이 나는 막둥이도 똑같은 금액으로 줬다. 물론, 통장에 입금하고 관리는 내가 했다.

세배돈을 친척분들이 나이차대로 주시면, 나는 똑같이 분배했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같이 안주더라. 첫째를 20살까지 줬으면 막내도 20살까지는 아니더란 말이다. 그 어른의 형편으로 사정으로 끊어졌다.

 

문구용품의 경우에도 가능하면 같은 것을 사주려고 했다. 수채화 물감, 붓 이런 것을 공용으로 사용하게 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용품으로 마음껏 사용하게 했다. 공용으로 하면, 사실 애착도 없고, 관리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반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내가 죽을 때를 생각해보면, 막내가 엄마와 같이 한 세월이 가장 짧다는 것.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만 36세였다. 30대에 아버지가 돌았가셨다니.... 서러웠다. 그런데, 내 동생은, 만 34세였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더 아팠다. 내 동생은, 서른 네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군대다 자취다 하면서 떨어져 산 세월도 더 많았는데...

 

그래서, 첫째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을 때, 둘째, 막내에게도 똑같이 줬다. 금액도 같게. 

 

무엇을 해 주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더 치우치지 않도록, 서운하지 않도록. 차별받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친척분들을 보면서 차별을 더 느꼈었다. 내가 첫째였지만 딸이고, 내 동생은 장손이어서 받게 되는 우대들. 특히 작은 집의 사촌동생은 내 동생과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더 어린 취급을 받았더랬다. 어린 내 눈에 그런 것들이 불합리해 보였다.

 

그리고, 요즘.....

나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공평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공평할 수도 없다. 어떤 기준으로 공평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조차 공평하려고 했지만 좌절인것을.
왜 꼭 행복해야 돼? 라는 장도연의 말처럼 꼭 공평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공평이 아닌 다른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은 또한 불평등하다. 그러나 기회는 평등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기회가 평등한 것 같다. 

집안일로 인한 세 자식들의 갈등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집안일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더라. 누군가는 더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덜 하게 되고. 같은 일이라도 각자의 능력치에 따라 노동 강도와 시간이 다르더구나.

 

그것을 불평하기 보다는, 개인의 차를 인정했으면 한다. 사바나 시절우리 조상들이 조금은 부족한 개체를 돌본 것처럼, 내가 힘이 더 있으면 조금 더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두고. 우리들의 자정적인 힘을 믿어보자. '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삼켜본다. 왜냐하면, 이젠 그들이 쉽지 않다. 독립된 개체들이다. 그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더 고민해보겠다. 내 필터에 걸리는 것이 없을 때, 말해야지.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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