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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연락 온 친구가 세바시에 아토피가 나왔다고 한다.

영상을 보았다.

친숙한 사진들.

할많하않.

 

 

youtu.be/bmdyZO-DxZQ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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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셋째가 중학교를 갔다.

초등학교는 스쿨버스를 탔고,

어리기도 해서 편의점에 매일 가지는 않았던 듯하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달라진다.

편의점을 매일 간 듯하다.

아침에 일찍 학교 가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간식, 음료 등을 사서,

(시골이라 마을버스가 자주 안 다님. 학교 앞에 내리는 시간이 8시. 등교시간은 8:50)

교실에 가서 아침에 일찍 온 아이들과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같이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작년 말.. 겨울이 되면서 팔에, 목에 보이는 좁쌀 아토피들이 점점 뭉쳐서

500원짜리 동전 크기 이상으로 번졌다.

온몸이 반점으로 덮인 듯한... 전형적인 전신 아토피다.

 

겨우 내 전신에 퍼질 대로 퍼진 지난 2월,
셋째와 대화를 했다.

 

1. 음식 조절 하기
2. 보조제를 꾸준히 먹기

3. 몸에 자주 크림 등을 바르기

 

지난달에 셋째의 방에 갔을 때,

방에 수북한 각질을 쓸어 담은 통을 보았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일 줄 알았는데...

 

돌 무렵부터 몇 년간 중증 전신 아토피였던 둘째와 셋째.

하루에도 몇 번씩 내복 속의 각질들을 털어냈었다.
(가장 심했을 때는 이것도 안됨. 진물과 내복이 붙어있음.)

수북하게 쌓인 각직들을 보면서,

이게 다 황금이면 좋겠다~라고 했던 아토피 카페의 엄마들이 생각했었다.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유머~

 

각질 통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
이게 모두 금이면 좋겠다~ 우리 부자 되는데, 그치? 

셋째가 ㅋㅋ 거린다.

 

4월이 되면서 가족 규칙을 하나 더 만들었다.

 

4. 셋째가 못 먹는 것은 가족 모두 먹지 않는다.

 

사춘기, 중2병, 친구들 못 만나는 스트레스...

그리고 전신으로 퍼진 아토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짜증내고,

덜 화내고,

조금 웃고,

그래도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셋째가 기특하고 고맙다.

 

이번 일을 통해,

식단관리를 스스로 해서 아토피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둘째의 경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세 끼 급식을 먹어도 조금 나타났다 사라지는 정도로 관리를 하고 있다.

습관화가 되었다.

(중학교를 홈 스쿨링 해서 편의점에 갈 일이 없었다......는 게 크다.)

 

셋째는 지금,식단관리를 하면서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유제품에 대한 반응이다.

일주일동안 매일 슬라이스 치즈 1장 먹는 것을 해 보는 중이다.

기록도 해보고라고 했고,

역시~ 중2는 하지 않는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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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부터 시작된 전신 중증아토피를 앓던 둘째와 셋째.
둘째는 열 여덟이 되었고, 셋째는 열 네살이다.

 

둘째는 올 1월과 5월에 내가 듣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작년 고1때와 지금 고2의 생활이 완전 다르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말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그 동안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말 못했는데...

    엄마가 내가 안 좋은 거 먹고 아토피 심해지면 물어보잖아.

    뭐 먹었니? 하고. 

    근데 그 말 들으면 너무 화나고,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됐다고 여겨져서

    힘들었어."

슬픈 표정도 심각한 표정도 아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내게 말했다!

 

   " 그랬어? 엄마는 몰랐네~.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교육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작년에 만약 이 말을 내게 했다면( 교육 전이라 안 했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자책했을 것이다.

 

내가 아이를 망쳤구나. 십칠년이 넘도록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나는 한다고 했는데... 

 

그 다음엔 이런 생각을 했겠지.

 

내가 미쳤지. 십년이상 밤에 2시간 이상 못자면서 돌보느라 내 몸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걱정되서 물어본건데, 화가 나?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어.

나는 이렇게 망가졌는데....

 

(실제 아파서 40대 이후 4~5년을 거의 종일 누워지냈다. 몸도, 마음도...)

 

하지만 지금은 교육받고 훈련중이다!

나는 전환되었다!

그래서 저 말이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고,

그 말을 해 준 둘째가 고마웠다.

그 후 셋째(는 어려서 교육을 안 받았다.)와 이런 대화를 했다.

 

"엄마가 너한테 뭐 먹었니? 하고 물어보면 너 바로 화내고 가버리잖아.

항상 갑자기 삐져서 엄마가 당황했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물어보면, 너한테 잘못했다고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 거였니?"

 

"응. 너무 짜증나!! 엄마 표정도 그래!!"

 

"그랬구나~ 미안해~ 앞으로 엄마가 안 물어볼께! 네가 먹고 기분 좋으면 됐어!!

다만, 한계치가 있다는.."

 

"엄마! 쉿!!"

 

"아~ 그래~ 쉿~!! "

 

이런 대화가 가능해졌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맞췄던 그 때의 나를 희생, 헌신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고, 그게 내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아이들에게 잘못되었다!! 라는 영향을 주었고,

아이들은 자신을 부족한 사람,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부정적인 생각만하고 살던 내가,

긍정의 마인드컨트롤이 안되었던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긍정의 말이 툭~ 튀어나와서 깜짝깜짝 놀란다!!

이거 나 맞아? ^^

 

사랑스런 내 첫째, 둘째, 셋째!!

보고 싶다~~~~~~~~~~~
(명절이니 다 보겠지만!! ^^)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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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밤에 둘째를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었다.

짐이 많아서, 버스타고 간다는 아이를 잡아 차에 태웠다.

교문 앞에서 내려달라는데, 교문 안에서 차가 나온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 보니, 차들이 많다. 

집에서 하루 보낸 아이들을 입소 시간에 맞추어 부모들이 데려다 주는 걸 몰랐다.

기숙사 건물 앞에 주차하니, 혼자 짐보따리들을 들고 간단다.

얼핏 다른 아이의 아빠가 트렁크를 건물안까지 들고 가는 게 보이길래,(눈치빠름~)

따라 내려서 보따기 하나를 들었다.

들어가면서 보니, 모두 트렁크를 밀고 간다.

둘째아이는, 커다란 가방을 낑낑거리며 들고, 배낭 한보따리 메고,

이불은 분홍보자기에 싸가지고......

이런. 

시골에서 갓 상경한 애가 따로 없다. 집에 트렁크도 많은데...ㅠㅠ

하여간, 어설프다. 

이것저것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정작 필요한 건 안 물어봤나보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지... 하고 생각해 본다.

(물론 바로 직전에 잔소리 한 다발이 마음 속에 장전되어 있었지만,

내려놓기로 해서... 말 안 했다. 잘 했다. 셀프칭찬이다.)


아이는 엄마 생각보다 10배 잘한다를 되뇌여본다.


엘리베이터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들어가려는 아이를 잡아,

꼭 끌어안아주며 인사를 했다...울컥.

근데 얘는 "엄마 얼른 타야돼~ "하며 쌩 하니 가버린다.

쩝.

눈물이 나오려다 쏘옥 들어간다.

진짜 0.0001초 끌어안았나?? 안아본 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눈이 어두워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길도 이상한데로 해서 집에 오느라. 슬퍼할 새도 없었다.


보통, 아들이 군대에 들어가 부대에서 작별인사를 하자마자부터

엄마는 운다. 한달.. 아니 몇 달 슬프단다.

그런데 1년쯤 지나면, 무슨 휴가를 그렇게 자주 나오냐고 한단다.

그런것이겠지.

고등학생도 기숙사 들여보내면 한 달은 생각나는데,

점점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1주 혹은 2주에 한번 나와서 사이도 더 좋다고.

그럴 듯 하다.

나도 유난히 둘째와 가장 많이, 가장 세게 싸우는데,

지금은 <섭섭>이지만 곧 <시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주말에 오면, 어쩌면 다정하게 대하며 

맛있는 거라도 해 주려고 할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부엌 근처는 얼씬도 하기 싫으니..




**고등학생 기숙사 필요물품(검색질로 찾은 내용)

1. 이불은 이불집에서 가서 기숙사이불 달라고 하면 준다고.

   아니면 빨기 쉬운 차렵이불이 좋고. 매트커버 혹은 패드 추가.

   냉난방은 잘 되어 있어서 두꺼운 이불은 필요없는 경우 많단다.

2. 수건 얇은 것 많이, 속옷 넉넉히, 드라이기, 텀블러, 욕실용 슬리퍼

3. 잠금장치 있는 트렁크( 물품 분실 대비)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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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날인데, 글쓰기를 밤 늦은 시간에 한다.


1.

이번 달에는 최민석 작가의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현재 <청춘,방황,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읽는중이다.

재미있어서 빨리 읽고 싶은데,

반면에 아끼느라 뜸들이게 되는 책이다.


2.

둘째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일 모레 일요일에 들어간다.

2학기때 들어가라고 윽박(?)지르다가,

하도 막내랑 투닥거리길래 일찍 들어가!!!!!!!!!!!!!!!

했더니,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단다.

그 다음날 바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기숙사 자리 있으니 당장 들어오라고.

이 녀석 들어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막상 바로 들어간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아이들에 대해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급 허전.

급 허전.

급 허전.

마음이 허한 게 달래지지 않는다.


3. 

우리가족은 일반적이지 않은 조금은 다른 관계들로 엮여있다.

남편의 재택근무기간이 길었고,

아이들의 홈스쿨링 기간도 길었고,

학교를 다니는 시기가 일치하지 않았고,

아토피 때문에 학교를 다녀도 안 나간 날이 더 많았다.

즉,

한 집에서 다섯명이 오글거리며 산 기간이 말도 못하게 길다는 것.

가족이라 해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일반적인 가정은 아침에 다 같이 나가서 저녁에 만나는 생활을 하기에

공유하는 시간이 아침, 저녁, 주말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1년 364일 24시간 붙어 있고,

나는 밤에도 아이들과 함께 자야만 했다.

왜냐하면, 가려워서 잠 못자는 둘째,세째는

밤마다 2~3시간 마다 깨서 가렵다고 긁고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긁어줘야 하니까.

한 아이당 짧으면 30분, 길면 2시간을 긁어줘야 했다.

그 생활을 13년 했다.

내 몸이 너무 안 좋아지고, 버티기 힘들어서, 

가끔 따로 나와 자기 시작했고, 지금은 잠자리 독립했다. (만세~)


4.

이런 이유로, 어쩌면 우리 가족은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서로 지나치게 잘 알아서 힘들기도 하고,

막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둘째는 영문도 모르는데,

막내가 둘째에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지나치게, 많이 붙어 생활한 부작용(?) 아닌 부작용.

그래서 조금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5.

그래도 막상, 보내려니... 짠하다.

첫째아이가 작년에 혼자 3개월 캠프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제

이렇게

아이들은

둥지를 떠나고

자기들의 세상을 찾아

뚜벅 뚜벅 걸어가야겠지.

내가 그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


아이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10배 더 잘하고,

자기(아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2배 더 잘 한단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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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사춘기 들어가는 아이를 맞는 자세 혹은 준비


두 번을 겪었다. 아이의 사춘기.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즘 사춘기는 대략 7년 정도는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위의 두 아이는 가장 힘든 시기는 지나갔고, 나머지 잔챙이 시기.

하지만 막내는, 아직 준비기일 뿐.


첫째의 사춘기는 나도 처음, 애도 처음이라 우왕좌왕...

서로 공부하듯이 지나갔고..(아직 좀 남긴 했음)

둘째의 사춘기는, 두번째라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이런 아이(나랑 똑같다고 함)는 처음이라...

울었다.

하필 내가 가장 힘들고, 누워지내던 시절과 겹쳐,

그야말로 분노-폭발-고성-눈물-읍소-사과-분노-폭발-고성-눈물-.....

둘이 무한반복하는 상황.

하지만, 좀 컸다고 말은 통하니,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


그러나...(두둥~~)

위의 두 아이들과 나이 차이 좀 나는 셋째는,

하아............................


막내 특유의 눈치빠름과 두뇌 회전력.

애교와 불쌍함과 화내기의 절묘한 시간차 공격으로 인해, 

이 아이의 어린 시절, 

혼내야 할 때, 

요즘말로 "귀요미 뿜뿜"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실수를 많이 한지라,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생각이 좀 남다른 것 같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눈치가 빨라요...)


게다가, 매일 글쓰기와 영어공부 등을 하며,

이제 나쁜 사람(?)에서 벗어나고자 애 쓰는 중이어서,

무조건 혼내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좀 더 지혜롭게 대하고자 하다보니,

혼낼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라기 보다는 걍 넘어간 거 같다..)

둘째 사춘기와 내 방바닥생활의 절정기와 겹쳐서,

적당한 시기를 놓쳐버린, 아니 방관해 버린것이겠지..


지금이라도 바로 잡는 게 맞을 듯하여, 

마침 기회가 왔을 때, 셋째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했다.

(근데 잔소리 폭탄이었던 듯.)

아이를 혼낼 때 1절만 해야 하는데,

꼭 도돌이표 무한반복이 되고 만다.

얼마전 첫째와 대화중,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랑 얘기하면 좋긴 한데, 

가끔(자주겠지..) 무한반복이라 지루해질 때가 있다(많다겠지..)고.

이제 아이들에게 조언을 들을 때가 왔다!!


셋째는 울었고, 나는 마음 아팠고, 

몇 시간이 지나도 셋째는 나한테 삐져있었고,

깜빡증이 심해진 나는 벌써 잊어버렸고.


**잊지말자!! (나에게 하는 충고)

1. 잔소리는 1절만 하세요. (아이들에게도, 나보다 나이 많은 아이(?)에게도)

2. 내가 잘못했으면, 상대가 어린아이여도 반드시 사과하세요.

   (아이에게 사과하기...생각보다 힘들다..ㅜㅜ

   아이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 잊지말자)

3. 혼낼 때는 감정을 싣지 마세요. 최대한 부드럽게 하세요.


의지력과 감정조절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혼내다보면, 감정 조절에 실패할 때가 많은데,

의지력이 가장 높아졌을 때 혼내면 괜찮을까?

간단한 걷기 운동이나, 거꾸로 누워있기 등으로 

뇌에 신선한 공기를 많이 공급해서 의지력을 채운 후 혼내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잔소리 반복도 참으면서 

잘 혼낼 수 있을까? 

아니면, 혼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일까...


막내의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약 1년 반정도 후로 예상되는 사춘기가 꽃 피울 그 시기,

바로 그 시기 중.이.병을 생각하며,

부디 마지막(셋째가 막내다. 휴우=3) 사춘기 아이와 지내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제발~~~)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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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지붕을 올리고, 창문까지 설치했을 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일단 입주(?)를 했다.

아직 방문들도 없고, 화장실 설치도 안 했고, 

심지어 현관문과 뒷문도 안 달려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닥 미장은 꼭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비싼 인건비를 주고 미장쟁이를 불러, 흙으로 바닥 마감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흙이 마르면서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

미장쟁이가 일을 쉽게 하려고, 흙반죽에 물을 너무 많이 탄 것이다.

흙집은 입주 하기 전에 몇 달 말리기 때문에, 건조시키능 중이었고,

계절은 바닥미장을 가을에 해서 겨울의 중간을 향해 가고 있던 때였다.

바닥의 갈라진 틈은 몇 mm수준이 아니라 1-2cm가 보통이고, 

심한 곳은 3cm 가 넘었다.

뉴스에 가끔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졌다고 하면서 나오는,

그 화면서 보이는 그 갈라진 논바닥처럼, 그렇게 우리 집 바닥이 갈라졌다.


하지만 아이들의 상태는 심해지는데,

바닥을 다시 손볼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시간만 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상태를 보면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늦봄부터 짓기 시작한 집이 미완성이지만

그 다음에 1월 마지막날 그냥 입주를 하기로.



(차마 올리기 힘든.. 하지만 그나마 몸에서 상태가 좋은 막내의 엉덩이 아래쪽 허벅지.

당시 찍은 사진들 중 그나마 덜 심해 보이는 사진. 더 이상 입주를 미룰 수 없는 이유)


현관문이 없어서 하우스용 비닐을 쳤는데, 그 사이로 드나들었고,

뒷문은 아예 잡색보온덮개로 가린 후 못을 쳤다.


화장실이 없어서 낮엔 옆동네에서 살던 집을 이용하고,

빨래 역시 그렇게 옆동네로 들고 다니며 해결했다. 

부엌엔 수도만 연결되어 있어서 고물상에서 구입한 업소용 작은 싱크대를 놓고

밥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집안의 바닥은 맨발로 다닐 수 없어서, 신발을 신고 다녀야만 했고,

잠자는 방만 유일하게, 지붕에 사용하고 남은 광목을 깔아두고 맨발로 다녔다.

잠은 광목 위에 요와 이불을 깔고 잤다. 

신발은 방문없는 문에 달아둔 광목방문(???) 밖에 둔 채 말이다.

이 당시 막내 1돌 반, 둘째 7살, 첫째 9살이었다.

그 불편함을 아이들은 해맑게 견디며 지냈다.



(사진 설명 : 신발이 있는 쪽이 복도. 사진 상단 중간 밝은 부분이 비닐문(?) 설치한 현관문)


창문은 많았는데, 커튼이 없어서 광목을 그냥 잘라서 못을 치고 지냈다.

처음엔 그냥 지냈는데 불을 켜는 오후 늦게가 되면, 

밖에서 너무 들여다보여서 가리게 되었다.

전등도 설치되지 않아 임시로 작업등 들을 켰고,

한 밤중 아이들의 화장실은 유아변기를 이용해야 했다.

한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자다 깬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밥은 겨우 했지만, 상도 없어서 처음엔 신문지 깔고 둘러앉아 먹었다.

아이들은 그것도 재미있어 했다.

그러다 냉장고 대신 사용한 아이스박스를 이용하고,

찻상을 구해다가 거기서 먹기도 했다.


쓰고 보니 무슨 난민 생활같은데, 10년전의 2월~5월 이야기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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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처럼, 짧게 글을 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글이 흘러간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끌고 가는 착각마저 든다.


우여곡절끝에 지금 사는 곳의 초등학교로 첫째 아이를 전학시키고,

전쟁같은 집짓기가 시작되었다.

마을 텃세에 집 짓는 비용를 수백이나 뜯기고

(동네 인사차원이 아니라, 집 짓는 자격(?)같은 게 필요하단다.

우리는 외지인이라 없어서, 이를테면 그런 자격을 빌리는 비용을 냈다.

나중에 보니, 그런 거 없더라. 

돈 돌려달라하니, 이미 술먹는 데 다 썼다고. 동네 분들이 마신 게 아니라,

돈을 받은 그 분 혼자...ㅜㅜ 집 짓는 비용 한 푼이 아쉬운데.)


흙집 짓는 이야기만 해도 할 말이 참 많다.

이건 나중에 다른 꼭지로 써 봐야 겠다.


집 짓는 땅의 인근에 집을 얻어서 살면서 남편은 흙(황토)을 구하고,

인부를 구하고, 수 많은 자재를 구하러 다녔다.

황토를 구하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남쪽만 해도 황토가 많지만 수도권쪽은 황토가 귀했다.

그러다보니 가격도 비싸고...


집의 서까래는 편백을 사용하기로 하고, 전라도 지역을 뒤져서 편백을 구했다.

그런데 몰랐던 사실 하나.

정작 편백 서까래를 판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백과 삼나무를 구분하지 않았다.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삼나무와 편백을 구분해서, 편백만 취급하는 곳을 찾아 어렵게 구입하였다.


(당시 자료를 구하던 중, 일본에서는 삼나무 알레르기가 많다고 하여,

삼나무는 무조건 피했다. 

현재 업데이트 된 자료가 있나 찾아보니, 삼나무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 환자가 많다고 한다.

편백의 꽃가루도 문제라는 기사도 있는데, 삼나무에 비해 매우 적다고 한다.

나무 수가 적어서 적다는 것인지, 꽃가루 자체의 영향이 삼나무보다 적다는 것인지,

기사를 읽고는 잘 모르겠다. ㅠㅠ

또, 꽃가루만의 문제인지, 나무 자체도 문제가 되는가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했다.

자작나무 같은 경우 나무 자체가 알레르기를 유발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자작나무로 목공을 하다가 사과알레르기에 걸린 사례를 보았고,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E0 등급의 자작나무합판임에도 

합판을 책상처럼 매일 얼굴 가까이 사용하다가 

얼굴에 아토피가 확 올라와 고생한 경험이 있다.

일본은 아토피가 워낙 많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관련 연구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과 많이 달라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벽과 바닥은 황토, 벽에 군데군데 육송, 

서까래와 개판(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를 막은 판재)은 편백을 사용하여 지은 집이다.

황토집 혹은 흙집이라고 해도 시멘트같은 것을 섞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 없었다.

무조건 자연재료만. 그리고 나무들도 해롭지 않은 나무들만 사용했다.

그래서 집을 유리로 만든 꽃마냥 조심 조심(!!!) 다뤄야 한다.


덧글 : 이야기가 자꾸 길어진다.

       다음엔, 간단하게 결과만 써야 하나 고민이 된다.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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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달 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4,5월 아이를 학교 보내보니, 참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학교는 같은 단지였고, 문구점은 길 건너 단지에 있었는데,

담임이 자꾸 우리 첫째아이에게만 아침에 준비물 샘플를 문구점에서 가져오라는 것이다.

반이상이 건너 단지에서 살았음에도 말이다.

막내를 업고, 둘째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다가 학교 울타리와 만나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큰 길을 건넌다. 

다시 오른쪽으로 틀어서 걸어간다. 다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되짚는 것이다. 

건너 단지의 아파트 상가의 문구점은 2층. 가서 준비물 샘플을 가지고 학교로 가야 했다.

아침 8시가 채 안된 상가안은 어두 컴컴하다.

비상구의 불빛만으로 계단을 올라가 건물내부를 가로질러 불켜진 문구점을 찾아가야 했다.


샘플을 준비하라 했으니, 우리 아이보고, 

아침에 들러서 가져오라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이상했다. 

나중에 친청 엄마에게 여쭤보니, 그게 봉투를 가져오라는 뜻이란다.

(그 때는 촌지받지 않기를 했었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강남에 살고 있던 후배에게 몇 년 후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강남의 학교를 선생님이 거쳐가면

차를 바꾸고 아파트 평수가 바뀐다고. 교육청에 신고할텐데? 아니란다. 전혀. 

학부모들이 모두 당연하게 생각해서 신고하는 사람이 없단다. 뭐 당연히 조사할 일도 없겠지..

김영란법이 있는 지금은... 없어졌다고 믿고 싶다.)

 


이야기가 샜다. 갑자기 열이 받아서.  계속해서 당시 이야기를 해본다.

그 때 공개 수업이 있어서 셋째 아이를 업고 갔었다.

아이가 칭얼거려 교실과 복도를 왔다갔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 5~6년 전에 컴퓨터 정리하다가 그 사진을 봤었는데,

그 전에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던 광경이 보였다.

복도에서 아이를 찍다보니, 교실 맨 뒤의 엄마들까지 나왔다.

쪼르르 서 있는 열 댓명의 엄마들은 모두 풀메에 정장.

그리고 그 중 일곱 명인가 들고 있는 가방은 똑같은 루***. 그것도 같은 모델..ㅜㅜ

가방 동호회 번개인 줄.


둘째 아이가 문질러 생긴 진물 얼룩이 군데 군데 있는 목 늘어진 티셔츠에,

무릎이 살짝 나온 바지.

첫째부터 사용해서 낡아버린, 빛 바래고 때가 탔으며, 진물 얼룩이 뭍은 포대기로,

얼굴이 벌건 아기를 업은, 대충 머리를 틀어올려 묶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어떤 엄마.

그게 나였다.


그런 화려한 차림의 엄마들은 무언가를 주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피해를 우리 첫째 아이가 고스란히 받았고.

그 와중에 다행이라 해야 하나. 

첫째 아이는 선생님이 공주님처럼 예쁘다고 좋아해서,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풀메이컵에 완벽한 이자이자머리 세팅, 화려한 치마 정장에 악세사리도 고급스러운,

패션도 완벽하고 세련된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5월 마지막날 전학을 했다. 

이후로도 첫째 아이에게 미안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엄마가 처음이다보니, 모두 시행착오와 경험부족, 그리고 지혜롭지 못함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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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아이들 황토집에서 12년째 사는 이유_1

아토피 아이들 황토집에서 12년째 사는 이유_2

아토피 아이들 황토집에서 12년째 사는 이유_3


(아직 아토피가 진행중이라 그런지, 다시 기억하는 게 어렵다..

오랜만에 쓰느라, 잠깐 핑계를 대본다)


주택은, 그 때까지 살아온 삶에서 고려 해 본 적이 없는 카테고리였다.

주택이라...

일단 동네부터 찾아보았다. 

당시 구기동에 사촌언니가 살고 있어서 그 동네를 찾아보았다.

이런...고급동네다. 비싸다.

서울과 가깝고 정리 잘된, 분당이나 일산의 주택지.

차를 타고 둘러보기만 했는데, 괜찮아보였다. 

당연했다. 여기도 고급주택. 비싸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벽들에 부딪히자, 이젠 땅을 보러 다니게 되었다.

수도권의 땅들을 찾아보았다. 지금 사는 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그러다 어찌저찌하여, 지금 동네의 땅을 사고, 직접 집을 짓기로 하였다.

업체를 선정하여 맡기는 게 아니라, 설계부터 시공까지 우리가 직접 하기로 한다.

황토집을 짓기로 하였기에, 여기저기 자료 조사를 하였고,

그러던 중 사각형이 아닌 원통형으로 흙집을 직접 짓는 것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다.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짓는 것이었다.


지금은 흙집을 짓는 업체가 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전무하였고,

있어도 한옥의 형태라 비용이 정말 비쌌다.

당시 일반적인 주택을 짓는 가격이 보통 평당 500 만원 정도였는데, 한옥은 1000 만원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책을 읽고 저자에게 연락 해락 해 보니, 지어주기는 하는데, 일단 흙집은 관리가 어려워서

흙집 짓는 교육을 받는 사람에 한해 지어준단다.

고민 끝에 4주였나? 한달인가 하는 교육을 받기로 하고, 거금의 교육비를 냈다.

그리고 당시 심한 둘째와 세째를 데리고 교육 장소(펜션 겸함)에서 따로 머믈기로 했다.


첫째 아이는 같이 갈 수 없던 이유가, 1학년 입학을 한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첫째아이의 입학식은 금요일이었다. 

교육은 바로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시작이라, 일요일에 첫째 아이만 친정에 맡긴 채 내려갔다.

당시에 선택의 여지를 생각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갔는데, 가족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외가에서 한 달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첫 손주라 정말 사랑 많이 받았고,

매일 등학교를 시켜주셨지만,

그래도 그래도...

동생 돌보느라 신경 잘 못 써주는 엄마라도 있는 게 나았을텐데...

(학창시절이었나. 못나도 울엄마 라는 글인지 책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문구를 본 기억이 난다. 못난 엄마라도 있는 게 낫다는...ㅜㅜ)

학교 처음 입학한 그 낯선 환경에서, 

가뜩이나 내향적이고 조용한 첫째 아이는 묵묵히 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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