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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세 아이들에게만은 공평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용돈을 줄 때, 첫째와 6년 차이 나는 막둥이도 똑같은 금액으로 줬다. 물론, 통장에 입금하고 관리는 내가 했다.

세배돈을 친척분들이 나이차대로 주시면, 나는 똑같이 분배했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일정한 시기가 되면 같이 안주더라. 첫째를 20살까지 줬으면 막내도 20살까지는 아니더란 말이다. 그 어른의 형편으로 사정으로 끊어졌다.

 

문구용품의 경우에도 가능하면 같은 것을 사주려고 했다. 수채화 물감, 붓 이런 것을 공용으로 사용하게 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용품으로 마음껏 사용하게 했다. 공용으로 하면, 사실 애착도 없고, 관리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기반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내가 죽을 때를 생각해보면, 막내가 엄마와 같이 한 세월이 가장 짧다는 것.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만 36세였다. 30대에 아버지가 돌았가셨다니.... 서러웠다. 그런데, 내 동생은, 만 34세였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더 아팠다. 내 동생은, 서른 네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군대다 자취다 하면서 떨어져 산 세월도 더 많았는데...

 

그래서, 첫째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을 때, 둘째, 막내에게도 똑같이 줬다. 금액도 같게. 

 

무엇을 해 주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더 치우치지 않도록, 서운하지 않도록. 차별받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친척분들을 보면서 차별을 더 느꼈었다. 내가 첫째였지만 딸이고, 내 동생은 장손이어서 받게 되는 우대들. 특히 작은 집의 사촌동생은 내 동생과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더 어린 취급을 받았더랬다. 어린 내 눈에 그런 것들이 불합리해 보였다.

 

그리고, 요즘.....

나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공평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공평할 수도 없다. 어떤 기준으로 공평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조차 공평하려고 했지만 좌절인것을.
왜 꼭 행복해야 돼? 라는 장도연의 말처럼 꼭 공평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공평이 아닌 다른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은 또한 불평등하다. 그러나 기회는 평등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기회가 평등한 것 같다. 

집안일로 인한 세 자식들의 갈등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집안일도 공평하게 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더라. 누군가는 더 일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덜 하게 되고. 같은 일이라도 각자의 능력치에 따라 노동 강도와 시간이 다르더구나.

 

그것을 불평하기 보다는, 개인의 차를 인정했으면 한다. 사바나 시절우리 조상들이 조금은 부족한 개체를 돌본 것처럼, 내가 힘이 더 있으면 조금 더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두고. 우리들의 자정적인 힘을 믿어보자. '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삼켜본다. 왜냐하면, 이젠 그들이 쉽지 않다. 독립된 개체들이다. 그들에게 하고자 했던 말을 더 고민해보겠다. 내 필터에 걸리는 것이 없을 때, 말해야지.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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