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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09 사랑하는 란돌이에게

너를 만난지 20년이 넘었구나.

우리 나이로 벌써 스물 하나.

나하고만 지낸지는 10년 4개월.

 

이제 너는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없다고 한다.

너를 감시하는 눈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겨우 집 근처만 맴도는 삶을 살으라고 한다.

 

거친 길도 신나게 달렸던 너.

칠흙같이 어두운 길도 너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았다.

걸어가기 힘들 것 같은 산길도 너는 내 달렸다.

물길도 너는 내 달렸다.

모래길도 미끄러지며, 빠지며, 다시 힘을 내어 나오던 너.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너의 힘으로 구조도 했다.

 

그러던 너와 이별을 하란다.

더 이상 이 곳에서 지낼 수 없다고 보내주라고 한다.

 

힘에 부쳐 힘차게 나아가지 않아도,

여기저기 삐걱 덜그덕 거려도,

방향을 트는 것 조차 힘겨워하고,

유리창 하나 닦지 못해도,

내게 너는 언제나

느리지만 착한 아이.

 

너에게는 나와 내 아이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첫아이를 데리고 아버지와 함께 갔던 임진각의 추억이 묻어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우리 가족과 친정 부모님과의 안면도 여행도 너와 함께였다.

 

여기저기 소리를 내며 이제는 예전같지 않은 너는,

그래도 내게 한번도 싫은 소리 안했고,

투정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살 달래면, 힘겹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던 너.

너의 높은 키는, 작은 나에게 자랑이고, 응원이고, 힘이었다.

 

너와 이제 이별을 준비한다.

 

99년식 코란도 290SR.

느리지만 착한아이.

내 란돌이.

 

 

Posted by vivaZze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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