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장에 막둥이를 들여보내고 (지금, 즐겨라!)
오랜 만에 새벽 도시락을 쌌다.
첫째, 둘째 초등,유치원 시절엔, 매일 도시락을 쌌었다. 급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크고, 막내가 6학년이 되자, 탈도시락 선언을 했다.
급식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만 도시락 먹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비아냥거리는 말 듣기가 싫단다.
그래서 막내 6학년이 되면서 내 도시락싸기 생활은 끝났다.
4년전, 둘째 수능날 한번 싸고, 오늘 새벽에 다시 쌌다.
막둥이의 요청은 간단했다. 백미, 계란말이, 김치.
나는 추가로 김과 토마토 썰은 것을 넣어주었다.
아!
중요한 것! 보온도시락을 못 열어서 점심을 굶는 수험생들이 많다는 뉴스를 본 기억에,
최첨단 장비 하나도 들려보냈다. 튼튼한 작은 포크 하나다! 장비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니, 4년 전 둘째는, 보온도시락 뚜껑을 못 열어서 같은 교실에 있던 덩치 큰 남자애에게 부탁해 먹었단다.
울 막둥이는 절대 부탁할 녀석이 아니다! 차라리 굶는 쪽을 선택할 녀석~
그래~ 이 엄마가 그래서 최첨단 장비를 준비했다, 욘석아!!
도시락 위에 포스트잇 하나 붙였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렴! 밥 꼭꼭 많이 씹어먹고.
정시로 갈 것도 아니고, 그 만큼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내신도 그저그렇기에 사실 수능은 막둥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보겠단다.
시험장 교문까지 (경사가 45도는 넘어보였다. 체감상...) 헉헉거리며 올라가면서,
즐겁게 보내~ 마음은 편하지? 하니,
근데 기분은 이상해~ 하며 웃는다. 그러면서 도시락 까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다나?
그래, 녀석아~ 오늘을 즐겨라! 시험지 한 장 한 장 보는 그 순간을 즐겨라~
어떻게 모든 아이들이 공부 잘 할 수 있겠니!
즈그 학교에서 전교 1등만 하다가 과학고 들어간 아이들도, 1등부터 꼴등까지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등수에 연연하지 말자!
성적에 연연하지 말자!
입시를 위한 시험성적에서 네가 잘하지 않는 것 알고 있다.
누구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너만의 그림체로 표현하는 것 알고 있다.
동물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너를 알고 있다.
식물에 대한 관찰력과 실험정신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거의 다 자는 수업시간에도 꼿꼿하게 고개들고 선생님을 말을 경청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너는 충분하다!
너의 존재만으로 너는 충분하다!
사랑하는 막둥아~ 즐거운 시간 보내고, 이따 맛있는 거 사먹자~~